분식집에서 발견한 작은 행복

어느 늦은 오후, 배를 살짝 비우고 동네를 돌던 중 문득 발걸음이 멈춘 곳이 있었다. 오래전부터 동네 구석진 골목에 자리 잡고 있었던 작은 분식집. 군데군데 페인트가 벗겨진 낡은 간판 아래, 유리문을 살짝 밀어보니 익숙한 튀김 기름 냄새와 매콤달콤한 양념 향기가 콧속을 파고들었다. 앉을 자리를 살피다 벽 한 켠의 작고 낡은 테이블에 착석했다. 테이블 위로 스며든 조명은 그리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포근한 빛을 뿜어내며 마치 오래전 안방에 놓인 스탠드 조명을 떠올리게 했다.

 

메뉴판을 들춰보니 저렴한 가격의 떡볶이, 순대, 김밥, 튀김들이 깔끔히 적혀 있었다. 특별할 것 없는 흔한 분식 메뉴지만, 왠지 모르게 그 조촐한 목록을 바라보고 있으니 마음 한 켠이 편안해졌다. 이번엔 떡볶이를 주문했다. 몇 분 뒤, 빨간 양념에 폭 담긴 떡과 어묵이 작은 접시에 담겨 나왔고, 그 위에는 가볍게 뿌려진 깨와 대파가 색감을 더했다. 첫 젓가락을 들어 떡 한 점을 입에 넣었을 때, 이곳의 맛은 수십 년 전 학교 앞 분식집에서, 혹은 놀이터 맞은편 포장마차에서 맛보았던 바로 그 익숙하고 안심되는 풍미였다. 매콤한 양념의 달콤하고 짭조름한 균형감, 부드럽게 씹히는 어묵의 질감, 그리고 온몸에 퍼지는 따뜻한 열기가 한데 어우러져 마음 깊숙한 곳에 담긴 기억의 서랍을 조용히 열어젖혔다.

 

주위를 둘러보니, 작고 허름한 공간 안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몇몇은 혼자 와서 조용히 김밥 한 줄을 씹으며 생각에 잠겨 있고, 다른 테이블에선 학생들이 깔깔대며 공책에 낙서를 하고 있었다. 또 한쪽 구석엔 어르신 한 분이 양손에 국물을 불어가며 오붓하게 식사를 즐기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그들 각자의 사연이 분명히 있을 터, 그저 분식 한 접시를 사이에 두고 어우러진 풍경은 서로 다른 삶들이 잠시 교차하는 작은 무대 같았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곳에서 누리는 행복은 더 크거나 특별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고급 레스토랑에서 나오는 정교한 요리나, 고가의 디저트가 아니어도 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값싼 떡볶이가 지친 하루 끝, 세상의 무게를 잠시나마 내려놓게 하고, 다른 이에게는 어린 시절 친구들과 웃고 뛰놀던 기억을 소환해주는 매개체가 된다. 또 다른 이에게는 이 낡은 분식집의 작은 테이블 모서리에 기대어 소박한 위안을 찾을 수 있는 은신처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분식집 안에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젓가락을 움직일 때, 한없이 간단한 음식들이 위로를 건네고 있었다. 맵고 달콤한 양념 속에 녹아든 과거의 흔적, 주위에 번지는 온기, 그리고 서로 다른 사람들이 어색하지 않게 한 공간을 공유하며 흐르는 느슨한 시간. 이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져 작은 행복을 빚어내고 있었다. 밖으로 나왔을 때, 해가 살짝 기울고 있었고, 내 마음속엔 톡 쏘는 매운 양념 같은 따뜻한 기억이 새겨졌다. 이 작은 분식집에서의 한 끼가, 어쩌면 나에게 세상 어딘가에 분명 존재하는 잔잔한 행복들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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